기업들이 이공계 전공자들의 경제감각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의 한 대학에서 이공계 학생 등이 매경TEST를 치르고 있다. [매경DB]
"반도체기업에서는 연구개발(R&D)이 가장 중요하죠. 하지만 기술력만 믿고 밀어내기식으로 생산하면 망할 수도 있습니다. 운이 없어 경기 불황에 직면할 수도 있고 새로운 트렌드에 뒤처질 수도 있기 때문이죠. 우리 임직원이 이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반도체 소재업체 M사 경영지원본부장은 `매경TEST` 도입 이유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M사 핵심 자원인 R&D 담당 연구원들이 자신의 분야에만 머물지 말고 시야를 넓혀 시장을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그는 "반도체 업종은 특히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연구원들 스스로 시장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능동적으로 대처해줘야 기업이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단 연구직과 사무직 임직원에게 모두 매경테스트를 치르게 할 예정"이라며 "이를 통해 경제ㆍ경영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향후 정기적으로 승진 평가에 반영해 스스로 공부하는 분위기를 형성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M사처럼 `매경TEST`를 내부 승진 평가 등에 채택하는 IT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실리콘 중심 부품소재업체 D사, 장비업체 N사, 화학업체 D사 등이 최근 매경테스트(이하 매테)를 도입해 임직원 평가에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N사 인사팀장은 "최고경영자(CEO)가 연구원들에게 원가 관리 등 비즈니스 감각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며 "최근 신문 기사를 통해 매테가 경제뿐 아니라 경영 분야까지 포괄해 비즈니스 사고력을 높여주는 시험이라는 것을 알고 도입을 추진하게 됐다"고 전했다.
부품소재업체 D사 인사팀 관계자는 "특히 매테는 직무별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기 때문에 활용성이 높다"며 "예를 들어 마케팅팀 직원과 R&D팀 연구원 간 경제ㆍ경영 지식이 다르다는 점을 반영해 서로 다른 커트라인(기준점수)을 제시하기 때문에 임직원의 거부감이 덜하다"고 말했다.
매경TEST 전문가협의회는 주요 직무별로 필요한 경제ㆍ경영 관련 지식ㆍ시사ㆍ사고력 항목의 종류와 깊이를 선별해 기준점수를 제시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가장 높은 수준의 매테 점수를 요구하는 직무는 기획ㆍ전략이다.
기준점수는 1000점 만점에 750점. 이어 영업ㆍ마케팅의 기준점수가 700점, 회계ㆍ재무 650점, 총무ㆍ인사 600점, 생산ㆍ품질 550점, R&D 500점 등이다. 전문가협의회는 직무 연관성을 `직접`과 `간접` 항목으로 나눠 가중치를 주는 방식으로 기준점수를 책정했다.
기준점수에 대해 다른 기업 관계자는 "매테를 처음 도입할 때 R&D팀 반발이 심했다. 이들이 수익성을 갖춘 제품을 내놓으려면 경제ㆍ경영에 대한 현실 감각을 갖춰야 하지만 기획ㆍ전략팀처럼 높은 점수를 요구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며 "하지만 가이드라인이 기준점수를 직무별로 제시해줘 R&D팀에도 적절한 수준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이 같은 기업들 움직임에 발맞춰 이공계 취업 준비생들도 자신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수단으로 매테를 찾고 있다. 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들이 이공계 위주로 신입사원을 많이 뽑고 있어 다른 전공보다는 취업이 수월한 상태지만 기본 전공에 더해 비즈니스 마인드까지 보여준다면 수준 높은 차별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공계 전공자들의 매테 응시 비율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매경TEST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열린 매테 16회 정기시험 때 이공계 전공자 비율은 9.88%에 그쳤지만 올해 2월(19회) 12.09%, 8월(21회) 12.63%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응시 비율과 함께 이공계 응시자들의 성적도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16회 때 이공계 평균 점수는 523.17점이었지만 21회 때는 578.61점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재현 기자 / 유태형 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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