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기사 이렇게 읽어요 ◆
`통장전쟁`이라고 불리는 계좌이동제가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됩니다. 계좌이동제는 은행 거래자가 주(主)거래 계좌를 다른 은행으로 옮기기 원할 때 기존 계좌에 연결된 카드 대금이나 각종 공과금 자동이체 등을 통합 인터넷 사이트(www.payinfo.or.kr)를 통해 간편하게 옮길 수 있는 제도입니다. 지금까지는 거래 은행을 바꿔 계좌를 옮기면 자동이체 등은 일일이 거래 회사에 전화해 바꿔야 하기 때문에 불편했죠.
계좌이동제가 도입되면서 주거래 은행을 옮길 때 발생할 수 있는 불편함이 대거 사라지는 만큼 금융권에서는 은행 간 고객 빼앗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금융결제원과 은행연합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이체 건수는 26억1000만건이며 규모는 799조8000억원에 이릅니다. 또 지난 3월 말 기준 자동이체 등록이 가능한 수시입출금식 예금 잔액은 419조원입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죠.
2013년 이 제도를 도입한 영국에서는 올해 3월까지 약 175만건의 계좌가 이동했습니다. 특히 계좌이동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대형 은행이 쓴맛을 봤습니다. 반면 중소형 은행인 산탄데르는 17만계좌, 할리팍스는 15만계좌가 순유입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산탄데르는 예금 잔액에 대해 최고 3% 금리를 주고, 휴대전화 요금이나 가스비 결제 등에 대해 1~3% 캐시백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할리팍스 역시 계좌이동 시 일시금으로 125유로를 주고, 일정 금액 이상 잔액을 유지하면 매달 5유로의 현금 인센티브를 제공했죠.
이 때문에 국내 은행도 제도 도입에 맞춰 고객을 뺏기지 않기 위해 금리나 수수료 혜택을 늘리는 등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발 빠르게 움직인 곳은 우리은행입니다. 우리은행은 지난 3월 계좌이동제에 대비해 입출식통장, 신용대출, 신용카드로 구성된 `우리 주거래 고객 상품 패키지`를 출시한 데 이어 예·적금 특징을 결합해 복리 효과를 노리는 `주거래 예금`도 내놨죠.
특히 은행 업계 1위를 다투는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간 경쟁은 전쟁을 방불케 한답니다. 국민은행이 신규 고객에게 전자금융 타행 이체와 자동화기기 시간 외 출금, 타행 자동이체 등 세 가지 수수료를 무제한 면제하는 상품을 내놓자 이미 계좌이동제 대응 상품을 선보였던 신한은행도 이에 질세라 기존 상품에 `수수료 무제한 면제` 조건을 추가한 겁니다.
수수료 면제 외에 다른 혜택을 주는 상품도 나왔습니다. KB손해보험은 KB매직카 KB국민카드로 자동차보험을 포함한 보험료를 결제하면 보험료의 10%(연 최대 3만원)를 할인해주는 상품을 출시했습니다. 신용카드로 보험료를 납부할 수 없는 삼성·한화생명 등 전업계 생보사 14곳 고객을 끌어오기 위해 내놓은 무기인 셈이죠. 신한카드와 신한생명의 연계 상품인 `신한생명-신한카드 빅플러스` 제휴카드에도 보험료 인하 혜택을 담았습니다.
하나은행과 하나카드가 연계한 `씨크릿 적금`은 금리 우대와 적금 납입이란 두 가지 혜택을 담았습니다. 적금 가입 이후 3개월 내에 결제계좌가 하나은행인 하나카드로 월 10만원 이상 결제하면 기본금리에 0.1%포인트 우대금리를 얹어주는 방식입니다. 자동차 할부금융과 결합한 연계 상품도 있습니다. 신한은행과 신한카드가 내놓은 마이카 대출은 연 3%대 금리로 자동차할부금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최대 6년까지 분할 납부도 가능해 월 납임금을 대폭 줄일 수 있죠. KB금융그룹도 계열사와 연계해 금리 혜택을 높인 `자동차금융패키지`를 내놨습니다.
은행들이 이처럼 우후죽순으로 주거래 고객 우대 패키지를 선보이는 이유는 고객들이 계좌이동제로 편리하게 주거래 은행을 바꿀 수 있게 됨에 따라 `머니무브`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에요.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25~59세 서울시민 500명을 대상으로 계좌이동제와 관련해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주거래 은행을 변경했거나 변경하고 싶어했다는 응답자가 51.2%에 달했죠. 이 같은 응답은 시중은행들이 지금껏 신규 고객 유치에는 열을 올려왔지만 기존 고객 관리는 상대적으로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소액 예금자에 대한 혜택은 거의 없던 것이 사실이죠.
은행들 셈법이 복잡해지면서 과당경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른 은행 고객을 빼앗아오기 위해 실적을 높여주거나 직원들에게 할당량을 부여하는 등 출혈 경쟁 조짐도 보이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소비자 권익 제고를 위해 계좌이동제를 도입했지만 과당경쟁까지는 바라지 않고 있답니다. 또 계좌이동제가 은행 수익성에 악영향을 줄 전망입니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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