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교사들이 오사카 시립과학관에서 자기장을 시각화해 보여주는 기구를 시연해 보고 있다. [사진 제공 = 두산연강재단]
"한국의 과학 교과서는 매년 바뀐다면서요? 우리 교과서는 10년째 그대로입니다."
지난달 20일 일본 오사카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오사카부립 고즈고등학교. 한국의 과학중점학교와 유사한 성격의 `슈퍼 사이언스 하이스쿨(SSH)`로 선정된 간사이 지역 유명 고등학교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하고 매일경제신문,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한 `올해의 과학교사상` 수상자 40명이 지난달 19~25일 일본 오사카와 도쿄의 과학기술 현장에 대한 학술 시찰 기회를 가졌다.
두산연강재단 후원으로 진행된 시찰 셋째날 일정인 고즈고 방문에서 교사들은 일본 과학교육의 생생한 모습을 지켜보고 현지 교사들과 토론하는 시간도 가졌다. 학교 시설을 둘러본 한국 선생님들의 첫 표정은 황당함이었다. "실습 기자재 등 설비 수준만 보면 일본이 한국보다 10년은 뒤떨어져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데서 노벨상 수상자가 그리 많이 나오죠?" 실습실에 비치된 각종 실험 도구를 이것저것 들여다보던 양승희 용인 포곡고 교사는 "우리는 교실 현대화를 한다며 최신 설비를 들여놓았고, 교육 내용과 학생 수준도 월등히 우수하다"며 한숨을 지었다.
마침 옆 교실에서 지구과학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조용히 교실 뒤쪽으로 들어가 수업을 지켜보던 교사들은 그제서야 일본과 한국 간 과학교육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화산 폭발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담당 교사는 30여 명 학생 하나하나가 폭발의 기본 원리를 이해할 때까지 끈질기게 설명하고 있었다.
이인순 수락고 교사는 "철저히 기초와 기본원리를 습득하는 데 초점을 맞춘 수업이다. 학생들이 조금만 싫증을 내도 포기하고 마는 우리와 너무 다르다"고 말했다. 옆 자리 학생의 교과서를 잠시 빌려 살펴보니 각종 이론 설명과 도표로 가득 차 있다. 이어진 고즈고와 한국 과학교사 간 토론시간이 끝난 후 오노 쓰토무 고즈고 교사에게 양국 간 과학교육의 차이점을 물어봤다. "한국 과학 교과서는 최신 이론이 나오면 바로바로 반영을 한다네요. 기초원리를 완벽히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것도 벅찰 텐데…." 오노 교사는 "지나친 학력과 입시 중심 교육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최승규 세종과학고 교사는 "융합과 새로운 이론은 대학 가서 배워도 늦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 교사들의 공통된 인식이었다"며 "고교 때부터 기업가정신과 창업교육을 강조하는 우리의 과학수업 방향이 타당한지 자문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한 교사는 "철저히 기초를 강조하는 교육이념과 풍토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것 같다"고 말했다. 도쿄로 이동한 과학교사들은 우에노공원에 있는 국립과학박물관, 지요다구 소재 과학기술관 등을 방문했다. 사실 과학관이나 박물관은 한국에도 많이 있어서 `배울 게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교사들 눈에 큰 차이점이 발견됐다.
기생충까지 들어 있는 소의 위를 그대로 박제로 만들어놓은 것을 한참 동안 쳐다보던 문보영 하남 중앙초 교사는 "교실에서 소의 위가 4개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 수차례 설명하는 것보다 이걸 한번 보여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윤형 진주동중학교 교사는 "다양한 동물의 박재가 빼곡히 전시된 과학박물관에 와보니 마치 아프리카 초원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며 "일반인도 과학에 흥미를 갖고 깊이 파고들어 연구할 수 있게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노벨상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 10년째 동행한 박용현 이사장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주실 분들입니다. 기업인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우를 해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두산그룹 오너 일가이자 2009~2012년 그룹 회장을 맡기도 했던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 재단의 장학사업 중 하나인 우수 과학교사 해외 학술 시찰에 매년 동행하고 있다. 2007년 수학·과학교사 일본 연수를 시작으로 진행된 이 프로그램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으니 벌써 10년째다.
학술 시찰 프로그램이 일본 도쿄·오사카 지역의 비슷한 코스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박 이사장에게는 벌써 수차례 다녀간 곳이 수두룩하다. 지겨울 법도 하지만 박 이사장은 손사래를 친다.
"동행하는 선생님들은 매년 바뀝니다. 저는 이분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기 위해 참여합니다."
일정 내내 박 이사장에게서 재벌 오너의 위엄이나 거리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비행기부터 같은 이코노미석에 앉았고, 이동하는 버스에서는 유쾌한 농담을 하면서 분위기를 주도하기도 했다. 7박8일이라는 긴 일정인데도 각종 참관 프로그램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이분들의 소중한 가르침 덕분에 대한민국 과학기술을 이끌어갈 인재들이 성장합니다."
박 이사장이 이처럼 매년 과학교사들을 대상으로 일본 과학 현장 실습을 주선하는 이유는 과학기술 육성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기술 발전 없이는 국력이 커갈 수 없다"며 "우리보다 앞서 있는 일본의 과학교육 현장에서 선생님들이 많은 것을 배워 학생들의 교육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오사카·도쿄 = 임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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