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기사 이렇게 읽어요 ◆
치솟는 전세금 때문에 머리가 아픈 부모님들이 많을 거예요. 전세금이 집값에 육박할 만큼 한없이 오르고 있거든요. 부동산 가격을 조사하는 국가기관인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전세금은 82주 연속 오르고 있어요. 종전 기록은 2009~2010년에 나왔던 65주였는데 이보다도 17주나 더 이어지고 있어요. 문제는 전세금이 떨어질 기미가 안 보이는다는 점이에요.
2009년 2월 기준으로 3억원이면 전세 계약이 가능했던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전용면적 85㎡ 전세금은 요즘 6억5000만~6억8000만원이나 해요. 5년 새 두 배 이상 뛴 거죠. 같은 기간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전용면적 132㎡ 전세금은 5억원에서 12억~15억원으로 세 배 가까이 뛰었어요.
전세금이 치솟으면서 집값 대비 전세금 비율을 뜻하는 전세가율이 70%에 육박하고 있어요. 집값이 3억원이라고 하면 전세금이 2억1000만원이나 한다는 얘기예요. 매매가보다 전세금 상승폭이 높게 형성되면서 둘 간 격차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거지요.
부동산 전문가들은 보통 전세가율이 60%를 넘으면 사람들이 전세를 사는 대신 집을 산다고 해요.
실제로 전세금과 집값의 차이가 좁혀지면서 `이럴 바엔 차라리 집을 사자`는 사람이 조금씩 늘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 생각보다 많진 않아요. 전세를 살면 집주인 눈치도 봐야 하고 2년마다 재계약을 하거나 이사를 가야 해서 귀찮을 텐데 그래도 내 집을 사기보단 여전히 전세를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요. 왜 그럴까요?
집값은 크게 보면 사용가치와 투자가치로 구분할 수 있어요. 그중 전세금은 집의 사용가치를 의미하죠. 한 세입자가 5억원짜리 집을 3억원을 주고 2년 계약을 맺었다고 가정해봐요. 세입자는 2년 동안 집을 빌리는 대가로 3억원이라는 돈을 집주인에게 맡기는 셈이에요.
그러면 3억원이면 세 들어 살 수 있는 집을 사람들은 왜 5억원이나 주고 살까요? 차액인 2억원만큼을 집에 투자하면 앞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에요. 집값에서 전세금을 뺀 차액이 이 집의 투자가치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집이 투자처로서 매력을 잃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집주인은 5억원짜리 집을 팔고 3억원에 전세를 살면서 남은 2억원으로 예금, 적금, 주식 등 다른 곳에 넣어 수익을 내려고 하겠죠.
지금 시장이 이런 상황이에요. 앞으로 집값이 많이 오를 것이란 기대가 없어져 투자처로서 집의 매력이 과거보다 줄어든 거죠.
`집값이 떨어지면 서민은 싼값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겠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집값 하락이 전세금 상승을 부추겨 서민경제를 더욱 나쁘게 만들 수도 있어요. 또 집값이 떨어지면 대출을 받아 집을 샀던 집주인들이 대출이자 부담을 전세금 인상으로 세입자에게 떠넘기는 현상이 발생해요.
일반적으로 집을 살 때는 은행에서 많은 돈을 대출받게 돼요. 한 달에 대출이자로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을 내기도 하죠.
그런데 집주인은 집값이 안 오르고 오히려 떨어지기까지 하니 이자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집을 사려는 사람도 대출까지 받아서 집을 사야 하는데 집값이 안 오를 거 같으니 계속 기다리는 거예요. 집주인이 집을 내놔도 사려고 하는 사람이 없으니 일이 복잡해져요.
이렇게 되면 집주인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세입자를 상대로 전세금을 올리는 거예요. 앞에서 얘기했던 아파트로 예를 들어볼까요. 복잡한 조건들은 다 제외하고 2009년에 잠실동 리센츠 아파트를 8억원에 사면서 대출 5억원을 받았다고 해봐요. 2009년에는 전세금 3억원을 받아 대출을 갚고 2억원이 남으니 이 금액에 대한 이자를 계속 냈겠죠. 그런데 이자가 부담이 되면 어떻게 할까요? 2년 뒤 재계약할 때 1억원을 올리는 거예요. 그러고 또 2년 뒤에는 2억원을 올리고….
이런 식으로 하면 집주인은 대출을 다 갚게 되고 지금처럼 전세금이 6억원이 넘는 상황에선 오히려 `공돈`이 생기는 셈이죠. 그렇지만 세입자는 생활이 팍팍해지겠죠. 힘 없은 세입자가 절대 `갑`인 집주인의 이자를 대신 갚아주는 셈이에요.
부동산 전문가들은 적어도 물가상승률만큼은 집값이 올라줘야 부동산 시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얘기해요. 집값이 폭락하지 않고 최소한의 수준으로나마 오른다는 믿음이 있어야 부동산 시장이 자리를 잡고 전세금 폭등세도 잡힐 것이란 분석이에요.
[고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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